[김수종 칼럼] 영화 ‘퍼스트 맨’을 보고 느낀 것 – 디오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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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일요일 오전이 영화 관객이 많이 몰리는 시간인지 모르겠다. 600개의 좌석이 거의 꽉 찼다.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이든 사람들도 많았다.

영화 ‘퍼스트 맨’을 보았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미국의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인생을 그린, 전기(傳記) 영화다.

입소문 또는 영화평을 보고 구경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 적 TV 흑백 화면에서 달 착륙 장면을 보았던 사람들은 옛 기억을 되살리고 곱씹어보기 위해 이 영화를 구경했을 것 같다. 나도 그런 부류의 관객이었다. 오락적 요소라고는 하나도 없는 영화, 그러나 140분 동안 ‘진지한 긴장’이 관객의 마음을 한시도 놔주지 않았다.

 

영화에서 두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아폴로 11호의 발사를 앞두고 죽음을 상상하는 우주 비행사의 가족 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차별에 시달리는 소외계층이 아폴로 프로젝트에 항의하는 데모 광경이다.

암스트롱이 아폴로11호에 타기 전날 밤, 아내 자넷이 남편을 향해 아이들에게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언질을 주라고 다그친다. 부부와 두 어린 아들이 함께 앉아 어색한 작별 미팅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자 암스트롱이 그 손을 쥔다. 순간의 짧은 침묵이 관객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가족애와 임무수행 정신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스쳐지나가는 장면이다.

두 번째 극적인 장면은 아폴로 11호 발사를 놓고 미국 내 흑인 등 당시 소외된 계층의 반대 목소리였다. 그들은 삶이 고달픈데 백인들은 달로 여행을 간다는 불평등에 대한 항의였다. 영화에서는 스쳐지나가는 장면이지만 1960년대 미국을 흔들었던 흑인민권 운동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 이야기를 떠나서, 닐 암스트롱은 오래 우리의 가슴속에 기억될 만한 사람이다.

우주 비행사는 항상 죽음을 등에 지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는 우주 비행사로서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한번 아폴로 프로젝트에 앞서 진행된 제미니 우주선이 고장 났고, 또 한 번은 착륙 훈련과정에서 사고를 당했다.

암스트롱은 한국전쟁에서도 죽을 고비를 넘겼다. 1951년 한국전쟁에 해군조종사로 78회나 출격했다. 원산폭격 임무를 안고 출격했던 어느 날 그의 항공기가 북한 미사일에 맞아 추락했다. 그가 낙하산을 타고 착륙한 곳이 하필 북한 땅이었으나 동료들에 의해 구출됐다.

미국은 영웅에 열광하는 나라다. 수많은 분야에서 영웅이 탄생하고 화려한 대우를 받는다. 닐 암스트롱은 미국인이 원하는 진정한 영웅이었지만, 그는 겸손했다. 그의 그런 성격은 30여 년에 걸쳐 그의 청년 시절과 우주인의 삶을 지켜본 부인 자넷 암스트롱의 회상에서 엿볼 수 있다. “암스트롱은 수만 명의 사람들이 노력한 대가로 이룩된 일에 쏟아지는 갈채를 혼자 받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정치적 유혹과 고위직 제의도 사양하고 고향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학생들에게 공학을 가르치고, 강연을 통해 우주탐사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이 일으키는 소란을 지독히 싫어했다고 한다. 한 번은 이발사가 자신의 머리를 깎아준 후 그 머리털을 3000 달러에 팔아치운 것을 알게 된 암스트롱이 이발사에게 머리털을 내놓든지 받은 돈을 지불하든지 하라는 요구를 했다. 이발사가 돈을 내놓자 암스트롱은 대학에 기부했다.

월남전과 흑인민권 운동 등 1960년대 미국은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인간이 달에 발을 디딘 쾌거를 이룩한 것은, 임무를 진지하게 실행하는 암스트롱의 겸손함과 미국의 개척정신이 결합했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동네 쌀가게 마루에 앉아 흑백TV를 통해 암스트롱이 달착륙선 이글호의 계단을 내려가 ‘고요의 바다’에 첫발을 내디디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것이 1969년 7월 16일이었다. 50년 전 얘기다. 암스트롱은 2012년 이 세상을 떠났고, 그의 부인 자넷은 올해 6월 타계했다. 아버지가 달에 착륙할 당시 11세 초등학생이었던 큰 아들 릭 암스트롱은 올해 60세 환갑을 맞았다고 한다.

‘퍼스트 맨’을 보면서 머리를 스치는 상념은 영화의 재미보다는 ‘달 착륙’이라는 인류사적 쾌거를 오늘에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우주에 대한 인류의 탐사는 달을 넘어 화성으로, 그리고 외계행성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이 앞서나가고 러시아가 힘이 부친 모습으로 따라가고 있다. 뒤늦게 합류한 중국의 항공우주 개발 경쟁이 야무져 보이지만 미국이 50년 전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던 일을 오늘까지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화성 여행이 임박한 것같이 얘기되지만, 달 착륙에 비견되는 인간적 쾌거는 없었다. 어쩌면 우주를 향한 경쟁은 중국과 미국 민간기업의 경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 공간은 이제 미국 항공우주국(NASA) 같은 정부기관뿐 아니라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등 기업가의 비즈니스 영역으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한국도 나름대로 우주 탐사 작업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기상위성도 쏘아올리고 비록 남의 나라 우주선을 이용했지만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우주정거장에 보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직 성과는 미미해 보인다. 갑자기 50년 전 미국의 경제력이 오늘의 한국 경제력보다 나을 것도 없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갈 때 한국의 어린이들이 하늘을 보며 가졌던 호기심만큼 오늘의 한국 어린이들은 달과 별을 쳐다보며 호기심을 느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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