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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난 현대무용가 김설진(37)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피핑 톰 무용단에서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무대에 서서 행복했고 무용수로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다 경험한 것 같다”며 무용수에 대한 미련이 없음을 드러냈다.
2014년 엠넷 ‘댄싱9’에서 보여준 기발하고 독창적인 몸짓으로 무용계 스타로 떠오른 그가 무용수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김설진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지 나 자신은 변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무용·안무·연기·연출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 중요한 건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사실이다.
◇현대무용 스타, 국립무용단의 첫 만남
김설진은 오는 11월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오르는 국립무용단 신작 ‘더 룸’의 안무를 맡았다.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김설진과 국립극장 전속단체로 한국무용을 중심으로 하는 국립무용단의 첫 작업이라는 점에서 공연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방’이 작품의 중요한 소재다. 김설진은 “유럽에서 솔로 작품으로 투어를 하면서 호텔 방을 전전하던 것에서 출발한 작품”이라며 “인간이 머물다 간 방이 한 사람의 인생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에서 방을 통해 사람의 인생과 삶을 다루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김설진은 직접 8명의 국립무용단 단원들을 선정했다. 최고참 단원 김현숙부터 최연소 단원 최호종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무용수가 작품을 꾸민린다. 김설진은 “춤 실력으로 무용수를 선정할 생각은 없었다”며 “오디션 때 실수를 하거나 앉아서 쉴 때, 또는 평소 습관이 포착될 때 저 사람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해지는 사람들을 주로 뽑았다”고 밝혔다.
작업 방식도 기존 국립무용단 공연과 다르다. 무용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공동 안무로 공연을 준비 중이다. 김설진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현대무용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무용수들에게 내 이야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용수도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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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도 연기도 ‘사람’ 이야기 위한 수단”
김설진은 참여하는 공연마다 빠른 티켓 판매를 기록하는 한국 무용계의 흔치 않은 스타다. ‘댄싱9’ 출연 이전부터 무용계에서는 이미 유명인이었다. 2008년 벨기에의 세계적인 현대무용단 피핑 톰 무용단에 입단해 전 세계 무대를 누볐다. 2014년부터는 국내에서 크리에이티브 그룹 무버를 창단해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배우로도 활동하며 단편영화와 드라마로 대중과 만났다. 김설진은 “연기의 경험이 많지 않아서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 활동을 시작하니 마치 편 가르기처럼 누구는 ‘무용 해야지’라고 말하고 또 누구는 ‘연기 안 할 거야?’라고 말한다”며 “나에게는 사람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사람을 공부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춤과 연기는 근본적으로 같다”고 덧붙였다.
해외 활동 경험이 많은 만큼 한국 무용계에 답답함을 느낄 때도 없지 않다. 김설진은 “한국도 많이 바뀌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외국은 무용수, 안무가, 기획자 이하 모든 창작진이 수평적인 관계로 작업한다는 점에서 배울 부분이 더 많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의 예술계의 초점이 철저하게 입시 제도에 맞춰진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라며 “예술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화 다양성이 존중 받는 교육으로 변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1시간 남짓한 만남에서 김설진이 가장 강조한 것은 ‘사람’과 ‘삶’이었다. 그는 작품의 영감을 어디서 받는지에 대한 질문에 “사는 것이 모두 다 영감이 된다”며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좋아하는 그림, 지금 들려오는 노트북 타자소리 등이 어느 순간 영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답했다.
지금은 무용수, 안무가, 배우 세 가지 다른 역할을 넘나들고 있지만 언젠가는 김설진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지 모른다. 앞으로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무용이나 안무로 안 풀리는 것이 때로는 글이나 그림, 사진으로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표현하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사실만큼은 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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