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의 갓모닝] 745. 만추에 떠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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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무렵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학교 수업을 빠지고 정릉의 경국사를 산책했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경국사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했다. 절 옆으로 정릉천이 흐르는 운치 있는 사찰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경국사가 북적였다. 경내 약수터로 가는 길에 촬영 장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영화를 찍는구나!’ 처음 보는 촬영장도 아닌데 호기심에 다가갔다. 조용한 사찰 약수터에서 무슨 영화를 찍는지 궁금했다.

그때였다. 잘생긴 젊은 남자 배우가 막 운동을 마친 듯 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고 통에 담는 장면을 연기하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영화의 남자 배우보다 매력적인 마스크였다. 그의 이름은 몰랐지만 단번에 대스타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것이 나와 신성일씨의 첫 만남이다.

이듬해 정릉 경국사에서 촬영했던 영화는 ‘가슴에 꿈은 가득히’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그 영화는 권투선수가 챔피언이 돼 여승이 된 어머니와 재회한다는 내용으로 신성일씨는 권투선수, 장동휘씨는 권투 코치를 연기했다. 그 영화가 개봉할 즈음, 신성일씨는 이미 인기 스타가 돼 있었다. 1962년 한운사 작가의 유명 라디오 드라마를 영화화한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에서 연상의 이민자와 뜨거운 사랑 연기를 펼쳐 대한민국의 여심을 사로잡았다.

신성일씨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조선일보 옆 아카데미 극장은 그의 영화를 개봉, 상영하는 전용관이 될 정도였다. 엄앵란씨와 함께했던 ‘맨발의 청춘’도 좋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영화는 ‘만추’다. 신성일씨는 생전에 만추를 “구성, 배우들의 연기, 작품의 짜임새, 영상, 연출 기법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운 내가 출연했던 작품 중 최고의 예술 작품이다”라고 회고했다. 나에게도 그랬다.

만추가 개봉했던 1966년은 내게 가슴 아픈 한 해였다. 많은 일이 있었고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 휴가를 나왔다가 우연히 극장에 들어가서 본 영화가 만추였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신성일과 문정숙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랑은 장면마다 나의 가슴을 울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모범수로 풀려난 혜림(문정숙)이 낙엽이 떨어지는 만추의 창경궁 벤치에 앉아 훈(신성일)을 기다리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만추에서 보여 준 신성일과 문정숙의 연기는 어느 외국 영화와 견줘도 손색없을 정도로 최고였다.

세월이 흘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그를 대구에서 우연히 만나 악수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의 진짜 목소리에 익숙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신성일씨의 목소리는 이창환 성우의 목소리였고, 엄앵란씨의 목소리는 고은정 성우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훗날 모 스포츠 신문 J기자가 신성일씨와 정식 만남을 제안했지만 “스타는 내 가슴속에 있는 게 좋습니다”라고 정중히 거절한 바 있다.

내게 소원이 있다면 영화 만추를 극장에서 다시 보는 것이다. 작고한 최은희씨가 북한에서 김정일이 소장한 만추를 본 적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의 컬렉션 중에는 만추뿐 아니라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도 있다고 한다. 북한의 도움으로 만약 만추를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다면 돌아가신 신성일씨도 크게 기뻐하지 않을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추에 떠난 남자, 신성일. 그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다음 생에도 빛나는 스타로 태어나 멋진 연기를 보여 주시길 바란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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