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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1~8호선 운행을 책임지는 공기업이자 1000만 ‘시민의 발’이다. 지난해 5월 서울메트로(1~4호선 운영)와 도시철도공사(5~8호선 운영)가 통합해 서울교통공사로 새 출발 했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직원 친인척(112명)의 ‘고용세습’ 의혹이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계기로 폭로하자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서울 근무가 가능하고 평균 연봉이 6000만원을 넘어 인기직장인 교통공사에서 그동안 어떤 비정상적인 행태가 벌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교통공사 ‘내부 직원들’을 찾아 나섰다.
서울교통공사 내부 직원 3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있었던 비정상적인 행태를 서울시청 인근 공원의 대나무 숲 앞에서 공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기자가 지난 25일 둘러본 교통공사 본사(서울 성동구) 주변은 최근의 여론 분위기를 반영하듯 어수선했다.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지면서 공사 측은 직원들 입단속에 나선 상태다. 공사 건물 주변 벤치에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웅성거렸다. 직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한 직원은 “자부심을 갖고 시민들을 위해 애쓰는 직원들이 대부분인데 마치 전체 직원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듯이 뉴스에 나와서 상당히 침통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018년 정기 공채 면점시험이 치러진 서울교통공사 별관. 공사는 “공정 채용”을 강조했다. 장세정 기자
교통공사 본사 건물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별관이 나온다. 이날 별관 3층에서는 올해 공개경쟁 채용(공채)시험 면접(17~26일)이 진행 중이었다. 이달 초 시작된 정기 공채에 3만여명이 지원했다. 청년 취업대란을 반영하듯 공채 평균 경쟁률은 65.9대 1이었다. 토목직의 경우 277대 1이나 됐다. 마침 면접시험을 마치고 나온 20대 취준생에게 최근 고용세습 논란을 아는지 물어봤다. 그는 “언론 보도를 통해 봤다”면서도 “최종 공채 결과에 혹시라도 영향을 줄 수 있어 걱정된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다.
서울교통공사 본사 주변은 최근 폭로된 고용세습 의혹에 성난 여론 분위기를 반영하듯 어수선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공사 내부의 육성을 들기 위해 직원 3명을 접촉했다. 지난 2월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태호 교통공사 사장을 상대로 무기계약직의 전면 정규직 전환 정책이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서(소송대리 중앙헌법법률사무소)를 낸 원고들이다. 곽용기(50·과장) 특혜반대법률소송단 단장, 이승원(41·과장) 소송단 간사, 김모 대리(30) 등 세 사람은 모두 기술직 공채 출신이다. 이들을 만나 상반기에만 2596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교통공사 내부에서 최근 몇 년간 채용을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들어봤다.
곽 단장은 ‘6급을’로 입사했는데 중간에 직급체계가 오락가락 바뀌면서 현재의 5급 승진까지 24년이 걸렸다. 이 간사는 IMF 사태로 구조조정이 이뤄진 뒤 10년 만에 처음 시행한 공채시험에 합격한 경우다. 당시에도 취업난이 심해 토익 점수를 첨부한 서류전형을 거쳤고 자격증을 2개 확보한 뒤 전공시험·영어시험·적성검사를 봐야 했다. 김 대리는 3년간 취업준비를 하면서 각종 자격증 다섯개를 딴 뒤에야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서울교통공사 내부 직원 3명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비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임현동 기자
세 사람은 기자에게 이구동성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채용 과정이 비상식적으로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의 가장 큰 차이는 급여다. 무기계약직은 승진이 없고 호봉만 있다 보니 입사 때는 무기계약직이 정규직보다 연봉 100만~200만원을 더 받는다. 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규직이 더 많이 받는 임금구조다.
-서울근무가 가능한 교통공사는 취준생들에게 대표적인 ‘좁은 문’인데.
“2017년 공채 때 전기 분야의 경우 유독 삼성 출신들이 많았다. 특히 삼성전자에서 갤럭시 휴대폰을 만들던 30대 중반 경력 사원이 신입 공채에 합격해 매우 놀랐다. 삼성전자같이 월급을 많이 주는 기업 직원이 안정적 직장을 찾겠다며 공사에 올 정도였다.”
“유학파와 SKY(서울대·연대·고대) 출신도 있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던 직원도 연봉이 2000만~3000만원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 왔다. 그런데 KAIST 출신 공채 사무직은 공사가 합리적인 원칙 없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반발해 다른 공기업으로 이직했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직원 친인척의 고용세습이 무더기로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서울교통공사 본사.
-정규직 전환에 반발해 헌법소원까지 낸 이유는.
“2018년 3월 1일부터 무시험으로 무기계약직 128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발표를 지난해 12월 말에 듣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박원순 시장은 정규직 전환으로 늘어날 공사 인건비를 충당할 예산 지원도 없이 정규직을 받으라고 요구했다. 정책 추진 과정 자체가 잘못됐다.”
“조합원 총투표도 없이 정규직 전환을 강행해 올해만 정규직이 받을 임금에서 28억원이 잠식됐다. 1인당으로 보면 얼마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임금은 시간에 따라 누적된다. 젊은 세대는 20~30년 뒤 미래의 위협으로 본다. 그때 경영상의 위기가 와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떠나고 없을 것 아닌가.”
“공사는 총액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매년 임금상승률은 3.5%로 제한돼 있고 그 범위에서 인건비를 써야 한다. 정규직 총원(1만5000명)이 늘어난 만큼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어진다. 기존 정규직들은 임금 인상이 적거나 없어지게 되고 승진도 더 어려워진다.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인건비 상승으로 적자가 늘어날 거고 이는 곧 기존 정규직들의 일자리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가 입사하기 위해 쓴 시간과 노력은 보상해주지 않는 정규직 전환 정책은 문제다.”
서울교통공사 내부 직원들은 통합진보당 출신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선동했다고 주장했다.임현동 기자
세 사람은 “공채 출신들의 정규직화 반대는 또 다른 기득권”이라는 비판 논리를 이들은 반박했다. 세 사람은 “우리가 비정규직의 이익을 빼앗은 게 아니다. 헌법 11조의 평등권은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상대적 평등으로 해석한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절차의 평등이 맞다”고 주장했다.
-직원 친인척들의 고용세습 얘기는 언제 처음 들었나.
“2016년 5월 구의역에서 비정규직 청년 김 모(당시 19세)씨 사망 사고 이후 외주 용역업체였던 은성PSD(파워 스크린 도어 업체)가 본사 직영으로 들어오면서 채용을 크게 늘렸다. 기간제(단기계약직)가 무기계약직(준 정규직)으로 바뀌는 와중에 직원들의 친인척이 좀 들어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역무지원직 6~7명이 ‘직원 가족’이란 소문도 돌았다.”
정년 퇴직과 신규 채용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한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홍보물. 장세정 기자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은 어떻게 진행됐나.
“구의역 사고 발생 이후 시민진상조사위원회가 생겼다. 조사위는 민주노총과 친박원순 시민단체 중심으로 구성됐다. 지하철노조 해고복직자 출신이자 민주노총 소속인 W씨가 실질적으로 조사위를 이끌었다. ‘구의역 사고 대시민보고회'(2016년 6월)를 했는데 그 전까지 자회사에 위탁했던 안전업무(비정규직)를 공사 직영 체제로 바꾸면서 정규직화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때 눈치 빠른 사람들은 비정규직으로 입사하면 정규직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정규직 전환 정보가 미리 샜다던데.
“누구에 의해 입사했다는 소문으로만 알아 추측할 수밖에 없다. 사실 더 웃기는 일은 채용 시기가 엄청 짧았단 사실이다. 2016년 9월과 12월 인력 부족으로 채용했는데 그 과정이 말이 안 됐다. 공고부터 합격까지 열흘도 안 걸렸으니 과정 자체가 짬짜미란 증거 아니겠나”.
세 사람은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 인사들의 정규직화 개입에 대해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도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힘쓴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고 특정 세력(민주노총 등 지칭)을 위한 정책으로 ‘노·노 갈등’까지 발생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이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세계노동절 기념 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 서울교통공사 내부 직원들은 “박원순 시장이 정규직화를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누가 정규직 전환을 주도했나.
“서울시와 민주노총이 주도했다고 본다. 이미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이 됐는데 그런데도 계속 공채와 동일하게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거다. 공채 본 사람들처럼 능력과 자격을 검증하는 공정한 과정을 거쳤으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 거다. 안전을 보강하기 위해서 안전업무직 인원도 늘리고, 처우도 상당히 개선(연 1000만 원씩 인상)해줬는데도 시험조차 치지 않고 정규직화를 무리하게 요구했다.”
2016년 5월 비정규직 청년이 스크린도어 공사 중에 숨진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장세정 기자
-시민 안전을 위해 정규직화하면서, 고용세습이 있었다면 김군의 죽음을 이용한 것 아닌가.
“정규직 전환 과정에 서울시도 개입했을 거다. 대표적인 예가 이번에 문제가 된 통진당 출신 L씨와 J씨 같은 경우다. 이들이 당시 입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사 직원의 친인척과는 관계가 없고, (박 시장과) 정치적으로 관련이 있다. 그들은 외주 용역을 직영화하면서 들어온 직원을 중심으로 업무협의체란 것을 내세워 조직화했다.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 아닌 ‘중규직’이라고 프레임을 짜고 그들이 차별받고 있다고 선동했다.”
“당초 정부 발표를 보면 정규직’화’이지 정규직 전환이 아니었다.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는 문제가 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울시의 독단적인 ‘노동 존중 특별시’ 정책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노동부 가이드라인은 무기계약직을 사실상 정규직으로 본다. 그래서 김군과 같은 은성PSD 기간제 직원을 무기계약직으로 다 전환했다. “
서울교통공사 내부 직원들이 중앙일보 단독 인터뷰에서 정규직 전환 과정의 문제를 공개했다. 임현동 기자
-그 과정에서 어떤 비정상적인 행태가 있었나.
“은성PSD에서 일한 직원들은 소수다. 공사 근무 형태에 맞추기에는 인력이 많이 부족해 2016년 9월과 12월에 당시 서울메트로 기준으로 안전업무직을 채용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무기계약직을 공모했는데 당시 채용 공고엔 정규직 전환이란 말이 아예 없었다. 채용 과정에서 면접이 문제였다. 면접관의 주관적 판단이 100% 반영되니 사용자 측 간부뿐 아니라 노조 간부가 개입될 여지가 많았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통진당 출신인 L씨와 J씨는 사고 난 은성PSD에서 근무한 경력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해본 적도 없으면서 사람들에게는 죽은 김 군의 동료라고 거짓말로 선동해 직원들이 화를 냈다. 나중에 공사 직원들을 통해 그 사실이 드러나자 직원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작년 12월 4일부터 12월 말까지 본사 앞에서 폭력에 기대서 불법 텐트 시위까지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왼쪽),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가운데)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약을 강하게 추진해왔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을 어떻게 보나.
“노동 환경 개선 노력은 맞다. 그러나 과정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현실적이지 못해 정의롭지 못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정규직화 정책도 국민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여론을 수렴하고 전문가와 각계각층의 의견을 받아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울시와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을 보면 정부 지침에 따라 언제까지 몇 명의 결과를 내라는 식이다.”
“서울시가 7월에 ‘노동 존중 특별시’를 선언하면서 산하 11개 기관의 무기계약직 25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발표 후 오래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했다. 과연 기회는 평등했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웠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규직 전환 정책은 사람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일자리의 정규직화가 돼야 한다. 이렇게 했어야 취준생에게 기회가 돌아갔을 텐데 기회는 평등하지 못했고 결국 1285명만 특혜를 받은 꼴이 됐다.”
2016년 비정규직 청년이 스크린도어 공사 중에 숨진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서울교통공사 측은 “승강장 안전문을 고치다 유명을 달리한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를 잊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장세정 기자
퇴근길에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번 승강장을 찾아가 봤다. 스크린도어 한쪽 벽면에 ‘너의 잘못이 아니야”너는 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교통공사 측은 “2016년 5월 28일 9-4 승강장 안전문을 고치다 유명을 달리한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를 잊지 않겠습니다. 시민과 노동자가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겠습니다”라는 글귀를 붙여놨다.
정규직화 과정에서 직원 친인척의 ‘고용세습’이 버젓이 벌어진 교통공사가 내건 홍보 문구에서 어떤 진정성도 느끼기 어려웠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김혜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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