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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전략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미신고’된 미사일 기지를 계속 운용 중이란 뉴욕타임스 보도를 놓고 ‘가짜뉴스’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CSIS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그간 대규모 기만 전술을 펼쳐왔다”며 북한이 16개 숨겨진 기지에서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보도했다.
CSIS 보고서는 민간위성업체 ‘디지털글로브’가 지난 3월29일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기지를 찍은 위성사진 12장을 근거로 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이 6월12일 북미 싱가포르 합의보다 일찍 촬영됐고, 미사일 기지가 맞더라도 북미 싱가포르 합의 대상이 아니라 뉴욕타임스 보도는 부정확한데도 우리 언론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재인용해 논란만 증폭시킨다는 주장이다.
북미 회담 합의문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확약한다는 문구가 있다. 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선 동창리 엔진시험장을 유관국 참관 하에 영구 폐기하고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른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용의가 있다고 합의했다. 북한 내 모든 미사일 기지 폐쇄는 남북미 합의사항이 아니라서 ‘미신고’됐다는 표현도 잘못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13일 “북한은 미사일 폐기 의무를 담은 어떤 협정도 맺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한미 정보당국은 군사용 위성을 이용해서 훨씬 더 상세히 이미 파악한 내용이다. 면밀히 주시 중인데 새로운 건 하나도 없다. 삭간몰 미사일 기지는 단거리용이다. 스커드와 노동, 단거리용으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이나 IRBM(중거리 탄도유도탄)과 무관한 기지”라고도 반박했다.
우리 언론은 13일 뉴욕타임스 보도를 일제히 받아쓰면서 북한이 마치 한반도 비핵화 합의를 어기고 비밀리에 미사일 기지를 운용하는 것처럼 보도하면서 북한의 기만술에 미국 행정부가 속았고, 남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와대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부정확하다고 판단하고 우리 언론 보도까지 확산되자 바로 잡는 차원에서 발빠르게 움직였다. 김 대변인은 “안보실 쪽과 상의해서 설명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며 13일 아침 긴급하게 브리핑을 연 이유를 밝혔다.
청와대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새로울 게 없는데도 뉴욕타임스와 우리 언론이 ‘비밀기지’, ‘미신고’, ‘기만’이라는 단어로 사실을 왜곡한다는 입장이다. 국방백서에 이미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1000기 넘게 가진 게 공개돼 있어 뉴욕타임스 보도에 할 말이 많다.
국가정보원도 14일 국회 정보위 간담회에서 “삭간몰 기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통상적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보기관도 비밀기지가 아니라 이미 정부 당국이 파악한 내용으로 뉴욕타임스 보도는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내놨다.
▲ 동아일보 14일자 3면 기사 모음. |
결정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아침(현지 시각) 트위터에서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우려하는 뉴욕타임스 보도 내용은 부정확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기사에 나온 기지를 충분히 알고 있고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면서 뉴욕타임스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규정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뉴욕타임스 보도에 실망하는 목소리를 전하면서 우리 언론의 재인용 보도를 경고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 원장은 페이스북에 “미국 정보당국이 훨씬 해상도가 높은 군사위성으로 이미 파악한 정보를 마치 새로운 발견으로 과장했다”며 “(뉴욕타임스는) 과연 그 정도의 의미부여를 할 만한 보고서라고 생각하는가. 상식적으로 이런 보고서가 나오면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고 썼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빅터 차 석좌가 등장한 것도 보도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저명한 북한 전문가’로 소개된 빅터 차는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의 속임수에 넘어갈 것이라고 했다.
빅터 차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 “북한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에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해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 정책을 수립해 핵 문제를 오판하게 했던 장본인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뉴욕타임스는 보도의 정확성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이번 보도는 객관적 사실을 뒤틀리고 주관적 해석을 붙여 매체 신뢰성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부정확하다는 반박이 쏟아지는데도 받아 쓰는 우리 언론이다.
중앙일보는 14일 “북 삭간몰 기지 파장 너무 다른 한미 대응”이라는 기사에서 미국의소리 질의에 답한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의 말을 근거로 뉴욕타임스 보도에 무게를 뒀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그가 한 약속을 지켜야 북한과 주민들 앞에 훨씬 더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 약속에는 완전한 비핵화 그리고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폐기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폐기라는 말을 쓴 게 “탄도미사일 관련 기술과 이미 생산한 미사일 탄두, 부품, 시설 등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CSIS 보고서 집필자인 조지프 버뮤디즈 연구원을 단독인터뷰했다며 “삭간몰 외에 다른 (미신고) 기지들에 대한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이 기지들도 여전히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다만 버뮤디즈 연구원은 “현재 이 비밀기지에서는 특별한 도발 징후는 발견되지 않고”있다고 밝혔다.
오히려 동아일보는 “청와대가 외국 민간연구소의 보고서를 직접 반박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도 달았다. 동아는 “南 겨냥한 마시일 기지에도 ‘北 두둔’”이라는 기사에서도 논란의 주체가 청와대 대변인의 입이라고 몰아세웠다.
동아일보는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 CSIS 보고서를 반박한 게 부적절하다고 봤는데, 정작 동아일보는 친트럼프 매체도 “김정은에 속았다”며 미국 매체 보도 내용을 잔뜩 인용하며 판을 키웠다.
반면 한국일보는 “보고서는 이 기지가 현재 가동 중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북한의 대미 합의 위반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라는 게 대체적 의견”이라고 짚었다. 한국일보는 “단거리탄도미사일 기지인 삭간몰 기지는 북미 협상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아울러 북한이 미사일 기지들의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북미 간 합의 위반을 의미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서울신문도 1면 “합의도 안 한 北미사일 문제 삼는 美강경파”라는 기사에서 “CSIS가 주장한 시설이 미사일 기지가 맞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미간 합의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 내 강경 보수세력이 비핵화 협상의 판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황을 왜곡 과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가 “6. 12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 약속은 완전한 비핵화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제거를 포함한다”고 밝힌 내용에 대해서도 서울신문은 중앙일보와 다른 해석을 내놨다.
서울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공동성명 타결 직후 “김 위원장이 주요 미사일 실험장을 파괴하기로 약속했다”고 한 발언을 언급하고 “이때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주요 미사일 실험장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장으로 대부분 전문가와 언론이 해석했다. 실제 그간 북한이 제시한 선제적 비핵화 조치는 풍계리 핵실험장 해체와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 뿐이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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