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유 전도사’ 오코너 “나는 치매 초기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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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편지 보내 스스로 밝혀
치매 남편 위해 공직 물러나기도

미국의 첫 여성 연방 대법관으로 25년간 봉직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88·사진) 전 대법관이 치매 유발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라고 스스로 밝혔다. 알츠하이머 치유 전도사로 나서며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의지를 안겨줬던 그는 이제 운명 같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23일 CNN 등에 따르면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거주하는 오코너는 법원에 보낸 서한 형식의 성명을 통해 “치매가 있는 삶의 마지막 단계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할지 모르지만, 축복받은 삶에 대한 감사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는 여전히 친지들과 더불어 살겠다”고 덧붙였다.

오코너 전 대법관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됐다. 보수-진보로 갈린 연방대법원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 ‘중도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유방암을 앓으면서도 법봉을 놓지 않았던 그는 2006년 역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던 남편을 보살피기 위해 대법관에서 물러났다. 그는 54년간 사랑했던 남편이 치매로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요양원에서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남편의 ‘외도’를 담담하게 지켜보는 오코너의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자 미국 사회는 감동의 물결로 일렁거렸다. 이후 그는 알츠하이머병 치유를 위한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미국 젊은이들에게 시민윤리를 강의하는 웹사이트 ‘아이시빅스’(iCivics)를 출범시켜 활발하게 활동했다. 오코너는 “새로운 지도자들이 아이시빅스를 이끌어야 할 때가 왔다”면서 그동안 주력해온 사회공헌활동도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은 “오코너 전 대법관은 거탑과 같은 인물이자 여성은 물론 법 앞에 평등한 모든 이의 모범이었다”며 “그 어떤 병세도 그가 많은 이를 위해 제공했던 영감과 열정을 앗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도 트위터를 통해 “오코너 전 대법관은 우리 모두의 표상이었으며 항상 국가를 위해 헌신해 왔다”며 “인생에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됐지만, 항상 우아함과 강인함을 잃지 않았던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박준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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